은행의 유동성 가운데 외화 유동성 추이는 원화 유동성과 달리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이다.
정기예금처럼 금리 인상 등을 통한 예금 예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며 중앙은행에서 통화 증발이 어려워 은행의 외화 유동성이 악화될 경우 은행의 대출태도 변화를 넘어 수출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지연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은행의 외화 유동성 지표는 수출 증가, 외국인투자자의 주식, 채권 순매수 등의 영향으로 과거 대비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은행의 평균 외화유동성 비율은 ‘18년 3월 기준 114.6%로 2년 전 대비 12.8%p나 개선되었다.
아울러 과거 대비 국내 은행의 외화예금이 큰 폭으로 증가, 자금 조달의 안정성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자금 이탈 시 은행의 외화 유동성은 여전히 악화될 수 있으며 순이자마진뿐만 아니라 대출태도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1) 외화 자산 대비 외화 부채가 많은 구조이어서 외화 조달 여건이 악화될 경우 은행 대출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데다
2) 원화가 국제 통화가 아닌 점,
3) 채권시장의 개방 정도가 높기 때문이다.
참고로 채권 시장 개방 이후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 확대로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잔고가 전체 외환보유고의 25.7% 수준까지 상승하였다.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한 채권은 국채와 통화안정채권 중심으로 단기에 대량 매각이 용이해 순매도 전환 시 외환시장 및 국내 자금시장에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은행 총재 역시 2018 BOK-BIS 컨퍼런스에서 외국인 채권자금의 대규모 유출 가능성을 언급, 국내 외환 시장의 변동성 요인으로 지적한 바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원인을 여전히 해외 요인으로 인식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금융위기 이전 대다수 투자자들은 미국 발 금융위기에도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로 인식, 이를 예측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1) 한국은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익스포저가 주요 선진국가 중 가장 적었으며
2) 주택가격 급등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위험 관리로 자산 가격 하락에 따른 은행 부실화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은행과 정부의 유동성위험 관리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 첫째, 정부의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 과정에 은행의 유동성 위험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유동성 관리를 소홀히 한 점이 은행 발 유동성 위기의 단초가 되었다.
두 번째, 기업 및 가계의 달러 자산 소유 규제가 완화되면서 달러가 기업 및 자산가의 주요 투자자산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2008년 5월부터 10월까지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과 채권 매도 규모가 320억 달러에 불과하였지만 같은 외환 보유액은 577억 달러나 감소하였다.
달러가치의 상승을 기대한 기업과 개인의 달러자산 수요가 늘어나면서 외환시장에서 달러 가수요가 증가한 점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판단된다.
한국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전망)이 조정되면서 외국인 투자자가 채권을 순매도로 전환, 국내 은행이 외화 유동성 부족 사태에 직면했지만 사실상 채권 매도 규모는 120억 불에 불과하였다.
2018년 역시 유사한 2008년과 유사한 시장 상황이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채권의 순매수 증가에도 외환보유액은 1/3 수준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외화 유동성 사태에 직면한 결정적 계기는 외환 수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투자자가 은행 등급 조정으로 앞으로 채권 매도를 늘릴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 때문이었다는 결론이다.
결론적으로 2008년과 마찬가지로 향후 은행의 외화 유동성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변수는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 순매도 전환 여부가 될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 매수 매도 추이를 분석해 볼 때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 매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는 첫째, 외국계 신용 평가사의 은행 및 국가 등급(전망) 변경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신용등급 변경이란 채무자의 지급 능력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채권 가격의 하락을 의미한다.
더욱이 은행 등급이 변경된다면 스왑의 상대인 은행의 상환 불이행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국채 외국인 투자자의 50% 내외가 한미간 금리차와 스왑 포인트간 차이인 재정차익을 목적으로 신용등급 변경으로 상환 불이행 위험이 높아질 경우 재정차익 목적의 단기 채권 투자 규모를 대폭 축소, 해외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외국계 신용 평가사는 오랫동안 은행 신용등급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가계부채 위험을 지적한 바 있다.
다만 무디스, S&P 등 주요 신용평가사는 가계부채 위험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2018년 7월 S&P 은행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과다한 가계부채가 은행산업 내 잠재적 위험이 되지만 감독당국의 선제적인 규제정책, 고정금리 및 원리금 분할상환 비중 확대를 통한 대출구조 개선 등으로 국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계부채 위험이 정부의 주장과 달리 수면 위로 부상된 후에도 은행 등급(전망)이 유지될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둘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변수를 들 수 있다.
기준금리 인상은 신용등급 변경과 함께 국채 가격의 하락을 의미한다.
그 동안 미국 등 여타 선진국과 달리 기준금리를 유지하면서 채권 가격의 상대수익률이 상승했던 점이 국내 채권의 투자 매력도를 높여와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채권가격이 하락한다면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한 외국계 장기 채권투자자들은 매도 추세로 전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참고로 9월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에서 매도를 지속하고 있으며 11월 역시 장기채권 중심으로 매도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은행의 원화 유동성과 외화 유동성을 악화가 가계부채 부실화 위험을 높여 외국계 신평사의 등급(전망) 변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인지하고 있는 정부는 금리를 인상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채권시장 및 외환시장, 그리고 원화 자금시장에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로부터 정부가 신뢰를 잃게 되면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 심화에도 여타 개도국과 같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기간 내에 추가로 인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계부채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구조조정을 위한 대안 마련과 같은 “플랜 B” 역시 적극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은행업종 비중 확대 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