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버의 길, 레이건의 길, 트럼프의 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하반기 세계 경제와 주식시장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세계 교역질서를 무너뜨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보호무역주의자에서,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풀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장려하는 자유주의자까지 그 범위가 넓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시장의 해석도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갔고, 이에 따라 시장의 변동성도 커져왔다.
20세기 이후 미국의 무역정책은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크게 다른 결과를 초래한 두 명의 대통령을 꼽을 수 있는데, 1928년 당선된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1981년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이 둘 사이를 오간다.
후버 대통령은 농부들에게 농산물 가격을 보호해주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을 실천했고 미국의 평균 관세율을 1928년 39%에서 1932년 59%까지 20%p나 올렸다.
당시 전세계 농산품 생산량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여기에 관세가 부과되자 농산품 가격은 급락했다.
후버 대통령은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올렸지만 교역 상대국들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의 농산물 교역은 급감했고 가격은 폭락했다.
원래 의도와 다르게 미국의 농민도 보호하지 못한 채 대공황을 촉발한 한가지 원인이 됐다.
2019년 5월말 전세계 투자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후버 대통령의 망령을 보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에 당선된 이후 1987년 46% 수준이던 법인세 최고세율를 34%까지 낮추고 강성 노조에 강경 대응하면서 기업들 편에 섰다.
당시 큰 폭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던 일본, 서독 등의 국가들과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이뤘는데, 합의 이후 달러당 250엔 수준이던 환율은 100엔 대 중반까지 하락했다.
작년 초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을 때에만 해도 전세계 투자자들은 제 2의 레이건을 기대했다.
위안화 가치가 절상될 것이고 중국의 아웃바운드 소비도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퍼졌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과 달랐다.
플라자 합의를 이룬 일본 대장성이 ‘잃어버린 20년’의 주범으로 몰렸던 실수를 중국은 반복하지 않았고, 그럴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트럼프의 생각
필자는 트럼프의 길이 후버의 길과 레이건의 길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꺼내 보는 것은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미국인들은 이제 미국을 새롭게 건설하는 국가적 노력을 함께해 나갈 것이다.
워싱턴 DC의 권력은 이제 미국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오랜기간 정치인들은 번성했지만 일자리는 없어지고 공장은 문을 닫았다.
범죄, 갱, 마약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잠재적 비용은 컸다.
미국은 수조달러를 해외에 지출했지만 미국내 인프라는 고통받았다.
미국 중산층의 자산은 줄었고 외국에 분배됐다.
새로운 비전인 아메리카 퍼스트가 미국을 이끌 것이다.
모든 무역과 세제, 이민, 대외관계는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
미국의 일자리가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미국내 새로운 도로와 공항, 철도, 프로젝트를 건설할 것이다. 앞으로 정책은 Buy America와 Hire America라는 단순한 규정을 따를 것이다.
다른 국가에 미국 사람의 방식을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이 그들의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세계가 함께 급진적인 이슬람과 싸워나가자”
2년 전 금융시장은 이 취임사를 보호무역의 메시지로만 받아들였지만 2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취해온 조치들은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작업들이었고, 그의 말들은 하나둘씩 현실이 돼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말 세제를 개편했고 미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35%에서 21%로 하락했다.
기업들에게 제조업 설비를 외국에 뒀을 때와의 차이를 없애 준 것이다.
제조업은 마진율이 박하기 때문에 법인세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하기 어렵다.
한국, 독일, 대만 등 제조업 중심 국가들의 법인세율은 모두 20% 대 초중반이다.
외국에 유보해 놓은 현금을 국내로 가지고 들어올 때 물리는 송환세도 현금에 대해 15.5%, 설비에 대해 8.0%로 낮춰줬다.
미국 기업들은 2017년 말 외국에 총 1조달러를 유보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돈을 미국으로 들여와 설비투자에 쓰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미국 기업들은 이 돈으로 투자를 하는 대신 자사주를 매입했다.
중국 등 외국에 생산설비를 그대로 두고 현금만 송환해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
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국 관세를 해당 품목에 대해서는 평균 5% 대에서 25% 대로 올렸다.
중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대략 25% 수준의 관세를 물리고 있기 때문에 양국간 상품이 이동할 때 비용을 같게 만들었다.
이러한 조치들이 취해진 이후 미국에서 설비를 이전하기로 한 기업들이 설비 이전 계획을 취소하는 등 변화의 조짐이 관측되고 있다.
볼보와 BMW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중국으로 설비를 이전할 계획을 철회했고, 미국의 제조업 수주는 2007년 5.3조달러를 기록한 이후 2018년에도 5.9조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데, 변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년 간 미국의 제조업 수주 가운데 IT의 감소 폭이 컸는데, 물류비가 높지 않고 단가는 비싼 제조품들의 공장이 중국 등 외국으로 이전된 결과다.
실제로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미국의 외국인 직접투자보다 미국의 해외 직접투자가 더 빠르게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관세 부과는 기업들의 중국으로 설비 이전을 취소케 하고, 미국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는 미국에 집행되게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트럼프의 계산법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로 관세를 부과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득실을 철저히 따진 뒤 이뤄질 것이다.
관세 부과로 얻는 것은 미국 내 투자의 증가이고, 반대로 잃는 것은 주식시장의 하락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데 신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500억달러 관세를 부과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의 핵심 밸류체인을 비껴서 관세를 부과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휴대전화인데, 지난 2,500억달러 관세 부과에 포함되지 않았다.
휴대전화의 소비가 큰 것도 한 이유이지만 더 큰 이유는 미국의 핵심 밸류체인을 건드리기 때문인 것이다.
비교할 만한 품목이 핸드백이다.
2,000억달러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됐다.
섬유의류가죽 산업의 부가가치 구성을 살펴보면 원자재, 저부가 제조품, 임금 등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반면 휴대전화는 고부가가치 제조품, 고부가가치 서비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미국이 부가가치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품목은 관세 부과에서 뺐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반영해 중국 등 지역에서 Coach 핸드백을 만드는 Tapestry의 주가는 올해 초부터 하락했지만 iPhone을 만드는 Apple의 주가는 올랐었다.
그러나 최근 Apple 주가도 빠지고 있는데, 남은 품목들에 대해서도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S&P500 소매점지수도 하락하고 있다.
관세가 제품가격에 전이될 경우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이 생기고 판매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소매점 지수의 하락은 미국의 경기침체의 전조 중 하나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관세 부과
에 신중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주가에 후행적으로 반영됐다.
주가와 지지율이 바로 연결돼 있다기 보다는 트럼프의 대통령으로서의 성패가 경제에 달려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반기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글로벌 주식시장은 관세 부과 가능성을 높여 반영하고 있지만 즉각 부과가 결정되기 보다는 최소한 시간을 끌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무역분쟁에 가려 있는 부분은 미국의 인프라를 포함한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이다.
지금은 미국의 산업재 업종, 한국의 미국 투자 관련 주식들을 저점에서 매수하기 좋은 구간이라고 생각한다.
2018 년의 트라우마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Capex 사이클이 회복되면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는 기대로 바뀔 것이다.
물론 미국 외 지역의 투자가 미국으로 이전되는 것이라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수혜는 제한되겠지만 그럼에도 불안이 진정되고 미국 경기가 살아나는 점은 분명 글로벌 주식시장에는 긍정적이다.
시각을 좁혀 보면 무역분쟁에 대한 기대가 우려로 바뀌면서 KOSPI는 2,100pt를 하회했다.
무역분쟁은 뉴스거리로서 임팩트는 크지만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세밀하게 가늠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작년 주식시장을 끌어내린 요인이 1) Fed의 긴축, 2) 중국의 긴축, 3) 무역분쟁이었다고 판단한다.
이 세 가지 악재의 위력이 최대에 달했을 때 KOSPI는 2,000pt를 일시적으로 하회했다.
무역분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Fed는 긴축을 멈췄고 중국 역시 부양으로 돌아섰다.
KOSPI가 2,000pt를 장기간 하회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무역분쟁이 실물과 주가에 미치는 영향
무역분쟁은 실물경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대미국 수출은 12월 이후 감소로 전환했고 수입 감소폭은 더 크다.
무역분쟁이 교역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의 가공무역에 대한 수출 증가율이 일반무역에 대한 수출 증가율을 밑돌고 있다.
중국의 대미수출 부진은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 영향을 미치고 기업들의 재고 소진을 늦춰 기업이익에도 부정적이다
주요국의 대응
무역분쟁으로 실물경기가 받을 영향은 시간을 두고 나타나겠지만 투자심리는 무역분쟁 관련 뉴스플로에 즉각 영향을 받는다.
뉴스플로와 주식시장의 반응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어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관세 부과 가능성이 언급되고 실제 관세가 부과될 때까지는 불확실성으로 조정을 받지만,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대응에 나서면 시장의 관심은 정책으로 옮겨가고 반등의 계기로 작용한다.
IMF가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변경한 과정도 이를 그대로 따랐다.
무역분쟁을 이유로 성장률을 0.2%p 하향 조정했지만 이후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나오면서 0.1%p 상향했다.
큰 틀에서는 부정적이나 패턴을 활용할 수 있다.
6월 말 G20까지 미국이 3,000억달러에 대해 관세부과 기한을 설정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의 보복관세 부과도 6월말까지는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 6월 말까지는 시장의 초점이 정책에 맞춰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중국이 어떤 부양책을 내놓을지, Fed는 보다 비둘기파적으로 돌아설 것인지를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시기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들어 통화와 재정을 모두 작년에 비하면 확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1~4월까지 사회 총융자는 9.5조위안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 증가했다.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올해 재정적자 목표가 확대됐다.
작년 중국의 재정수지는 GDP 대비 -2.2%를 기록해 2014년 이후 가장 적자폭이 작았으나 올해에는 -2.7%까
지 커질 예정이다.
미국 선물시장은 올해 12월 말 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70% 이상까지 반영했고 이에 따라 달러지수는 97선까지 밀렸다.
한국시간 6월 20일 예정된 FOMC에 대한 기대는 점차 커질 것이다.
만약 Fed가 6월 FOMC에서 지금보다 확장적인 스탠스를 나타낸다면 국내 주식시장에는 호재가 될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는 구간에서 KOSPI는 S&P500지수를 아웃 퍼폼해 왔다.
특히, 글로벌 투자가들은 작년에 미국 금리인상과 무역분쟁,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 겹치면서 미국 주식비중을 많이 늘려놓은 상태다.
작년처럼 미국 주식을 사기 위해 한국 등 다른 시장의 주식을 팔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의 대응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2.7%로 유지한다고 발언한 데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외환시장에 대한 개입은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월 이후 위안화가 달러에 대해 2.5% 절하되는 동안 원화는 달러에 대해 5.0% 가까이 절하됐다.
이는 내수로 경기를 부양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로 경기부진을 메우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높아진 환율은 내수주보다 수출주를, 아웃바운드 주식보다 인바운드 주식의 투자 매력을 높일 것이다.
트라우마 극복하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지시로 시작된 주식시장의 조정은 진정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관세 부과와 중국의 보복 관세 부과까지 실현된 상황에서 6월말 예정된 G20에서 두 나라 정상의 회담을 앞두고 있어서 그 전까지 부정적 뉴스플로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시장은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의 경기방어를 위한 정책에 초점이 맞출 것이다.
특히 6월 FOMC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은 내수 부양 수단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높아진 환율이 반등의 촉매제가 돼줄 것이다.
지금은 변동성이 잦아들며 시장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이다.
작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리포트 원문 link : http://file.mk.co.kr/imss/write/20190529140249__0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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