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이벤트에 따라 자산시장 급변동. 펀더멘탈 환경 점검 필요
지난 두 달 간 자산 가격이 요동쳤다.
8월 들어 G2 간 관세 수위는 한층 높아진 채 양국 간 갈등이 관세, 기술에서 금융, 안보로까지 비화됐다.
경기 침체(Recession) 공포가 재부상하면서 안전자산 선호를 자극했다.
세계적으로 마이너스(-) 금리 채권 규모가 16조달러를 넘어섰고, 미국 국채 30년 금리조차 2% 아래로 떨어졌다.
신흥국에서는 주식과 채권형 투자자금이 동반 유출됐으며 신흥국 통화가치까지 크게 절하됐다.
하지만 8월 말을 넘어 9월로 진입하며 금융시장 환경은 급변했다.
10월 초 워싱턴에서 G2 협상을 재개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주요국의 통화완화 정책까지 가세해 위험자산 투자심리는 빠르게 살아났다.
선진국 주가지수는 8월 급락분을 거의 되돌렸고, 신흥국 주가지수도 낙폭의 9부 능선까지 회복했다.
역으로 안전자산 선호 심리는 크게 후퇴했다.
미국 국채 30년 금리는 2.2% 대까지 반등했으며, 국채 10년 금리는 단기 저점 대비 30bp 넘게 올라 1.8% 내외를 회복했다.
국채 10년과 2년 금리 간 차이인 장단기 금리 차 역전 역시 해소됐다.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로 방출된 유동성의 잔재로 자산 가격 쏠림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G2 분쟁 격화에 따른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급변동은 사실상 원점으로 회귀했으며, 다시금 펀더멘탈 환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글로벌 물동량은 전년동월대비 소폭 감소세가 이어졌고, 기업들의 비용 부담 증가로 이익 전망치는 정체 상태가 계속된다.
유로존과 중국에 이어 미국의 제조업 PMI까지 기준치 아래로 떨어졌으며, OECD+Non 6개국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하락세가 계속된다.
경기는 침체와 반등의 기로에 있다.
경기 반등 가능성을 높이는 다섯 가지 근거
위험자산 가격은 상당 부분 회복됐으나 경기 침체 우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년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이 득세한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 발달과 글로벌 분업화, 유통망 혁신, 제품 수명주기 단축 등으로 인해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순환 주기가 짧아지고 진폭이 축소된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2년 정도 확장기가 전개된 후 다시 2년 간 수축기가 전개되는 흐름이 반복된다.
세계 경기는 2017년 하반기를 단기 정점으로 G2 분쟁 격화와 연준 통화정책 정상화 부담, 유로존 경기 악화 등에 2년 가까이 수축 국면이 전개됐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17년 9월 단기 정점을 찍고 2년 가까이 내리막 길을 걸었다.
짧고 좁아진 경기순환 주기를 감안하면, 세계는 물론 한국 역시 저점을 다지고 반등할 타이밍이 가까워졌다.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 근거에 기반해 연말로 가며 침체보다는 반등을 높게 본다.
첫째,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침체 우려를 자극했던 정책 불확실성이 완화될 조짐이다.
G2 분쟁은 지식재산권 법제화를 비롯해 국유기업 보조금 지급 철회 등 서비스 분야까지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양국은 스몰 딜에 초점을 둔다.
최근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행조치 분야에서 최소한 개념적인 합의는 이뤄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미국과 중국 공히 관세 수위를 조절하는 등 10월 초 워싱턴 회담을 앞두고 협상 기운이 고조된다.
중국이 1) 미국산 에너지 및 농산물 수입 확대, 2) 금융시장 개방 및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는 대가로 미국은 1) 일부 관세 철회, 2) 화웨이 제재 유예 등으로 화답이 예상된다.
예정대로 12월 15일을 기해 양국이 모든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G2 공히 분쟁의 피해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임계치를 넘어설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10월 말로 예정된 브렉시트 협상 기한 역시 연기가 검토된다.
영국 의회는 10월 19일까지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시 내년 1월까지 협상을 연장하는 노딜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존슨 총리가 의회의 공세에 맞서 꺼내 든 조기 총선안은 하원에서 잇따라 부결됐다.
여전히 노딜 브렉시트라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나, 영국 의회와 EU가 존슨 의도대로 움직일지는 의문이다.
홍콩 시위 확산과 사우디 원유 생산설비 피습 여파 등 지정학적 위험은 잔존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정책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을 해임하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섰다.
홍콩 시위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 개입을 자제한 가운데, 홍콩 행정장관의 송환법 철회로 시위 동력은 다소 후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원유 생산설비 피습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며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는 동시에 핵 협상을 재개한다는 유화책을 병행한다.
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을 심화시키기 보다는 평화적 협상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내년 대선에 유리하다.
한국을 둘러싼 대외 환경 또한 추가로 악화되지 않는다.
2월 말 미국과 북한의 2차 정상회담에서 협상 결렬로 얼어붙었던 북한 문제가 조금씩 실마리를 찾고 있다.
미국과 북한 간 실무진 대화의 물꼬가 다시 트였다.
한-일 갈등도 확전될 분위기는 아니다.
한국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양국 모두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 등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경제적 충돌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2일부터 26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대북 문제와 한-일 마찰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기대된다.
둘째, 확장적 정책 조합이다.
지난 2개월 간 금융시장 환경이 급변동하자 역으로 각국 중앙은행을 비롯해 정부의 확장적 정책 조합은 강화됐다.
연준은 7월에 이어 9월 FOMC까지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각각 25bp씩 인하했다.
향후 G2 무역 협상과 대외환경 변화에 따라 추가적인 인하 여지까지 남겨뒀다.
유럽중앙은행은 예금금리 연 -0.50%로 10bp 인하, 월 200억유로의 자산매입 재개 등 통화완화 패키지를 내놓았다.
일본은행, 영란은행조차 필요 시 완화책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인민은행은 대출금리 개혁안을 통해 실제 금리 인하를 유도하며 지급준비율도 연초에 이어 추가로 50bp 낮췄다.
인도와 브라질, 러시아 등 주요 신흥국은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에 동참했다.
신흥국의 자본 유출 위험이 8월에 비해 완화된 만큼 추가 완화 여력까지 상존한다.
한국은행은 7월에 기준금리를 연 1.50%로 25bp 낮춘데 이어 추가 인하가 전망된다.
8월 금통위에서 완화를 주장하는 소수 의견이 2명 등장했고 1~2차례 인하 여력은 남아있다.
재정정책까지 일부 가세한다.
3분기 만에 2/4분기 GDP가 전기대비 0.1% 역성장한 독일은 균형 예산을 포기하고 600억유로 재정지출 확대를 모색한다.
중국은 소비 부진이 심화되자 친환경 자동차 및 가전제품 구매 지원을 비롯해 감세 확대 등 부양책을 강화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재정건전성이 열악해 대규모 재정 확대를 도모할 수 없으나, 통화정책의 조력자 역할을 발판으로 재정정책이 보조를 맞추려는 모습이다.
한국 역시 경기 하강 압력에 대응해 적극적 재정 의지를 피력한다.
금년에도 추경 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내년 총지출 예산안을 금년보다 9.3% 증액할 계획이다.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보건·복지·노동, 환경, R&D, 산업·중소기업·에너지, SOC 등 지출 분야 예산을 두 자릿수 증가율로 늘린다.
특히 부품 및 소재 국산화 지원과 GTX를 비롯한 수도권 교통망 확충, 노후 인프라 교체 등 부가가치 유발계수가 큰 지출을 늘리는데 초점을 둔다.
셋째, 낮은 재고 부담이다.
1년 넘게 G2 분쟁이 이어져 교역량이 감소하고 투자가 위축되는 등 수요가 악화됐다.
대신 생산 감축을 통해 재고를 소진 중이다.
유로존과 중국은 재고를 적극적으로 줄여 GDP 대비 재고 증감은 예년 수준보다 낮은 상황이다.
미국은 2/4분기부터 재고 조정을 진행 중에 있다.
금융위기 때는 물론 2014~2015년 글로벌 공급 과잉이 심각했을 당시에 비해서 양호하다.
재고순환지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고 부담이 심각하다.
금년 2/4분기까지 GDP 대비 재고 증감은 오름세를 이어갔다.
제조업 재고/출하 비율과 유통 재고에 해당되는 도소매업 재고/판매 비율 역시 높은 수준이다.
좀 더 적극적인 재고 조정이 필요하다.
넷째, 기저효과(Base Effect)다.
작년 3/4분기부터 G2 간 관세 전쟁이 시작됐고, 그 여파로 글로벌 물동량의 전년동월대비 증가세는 대폭 후퇴하거나 심지어 감소했다.
기업실적 전망치 역시 비슷한 양상이다.
선진과 신흥 증시의 12개월 후행EPS 대비 12개월 선행EPS 증가율은 금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이미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국 일평균 수출액은 작년 4/4분기부터 전년동월대비 감소 전환된 가운데 금년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감소세를 기록했다.
물량 감소보다 단가 하락, 특히 반도체 가격 속락이 수출 감소세를 심화시켰다.
최근 반도체 가격 하락세는 멈췄다.
4/4분기에는 수출 감소 폭이 한 자릿수로 줄고 내년 1/4분기부터 증가 반전이 예상된다.
KOSPI의 12개월 후행EPS 대비 12개월 선행EPS 증가율은 금년 6월부터 플러스(+)로 돌아섰으며 9월부터 두 자릿수로 확대됐다.
물론 일평균 수출액과 기업실적 공히 2018년의 절대 수준을 회복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연수요(Pent-up Demand)다.
G2 분쟁 심화로 양국 공히 ICT 투자가 정체됐고 반도체 가격이 속락하면서 가장 피해를 크게 입은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이 지목된다.
유로존은 정책 불확실성에 더해 환경규제 강화 여파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는 등 수요가 악화됐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사이클은 끝나지 않았다.
G2 스몰 딜 합의 시 미국의 ICT 투자는 되살아난다.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표면적으로 수위를 조절하더라도 중국의 제조 2025 프로젝트 또한 지속된다.
1년 가까이 위축됐던 유로존의 자동차 판매 회복까지 기대된다.
G2가 스몰 딜에 합의하고 ICT 투자를 재개할 시 한국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IT 수출 수요가 개선된다.
LCD와 가전, 전기 등도 물량 회복을 예상한다.
수출이 호전될 시 악화됐던 설비투자까지 고개를 들 수 있다.
대외 갈등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속에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는데, 신차 효과와 전기차 구매 세제 혜택 등에 내구재 중심으로 소비 증가를 전망한다.
정리하면, 세계 경기는 ① 정책 불확실성 완화, ② 확장적 정책 조합, ③ 낮은 재고 부담, ④ 기저효과, ⑤ 이연수요 등에 힘입어 연말로 가며 완만한 반등을 전망한다.
한국도 비슷하나, 주요국에 비해 재고 부담은 다소 심각하다.
예상과 달리 G2 분쟁이 스몰 딜에 이르지 못하고 확전될 경우 경기 회복 기대는 요원하겠지만, 적어도 바로 침체에 빠질 상황은 아니다.
확장적 정책 조합과 재고 소진 등이 경기 하방 위험의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경기가 침체냐, 반등이냐의 기로에 놓인 것처럼 자산시장 환경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개월 간 G2 분쟁이 크게 격화됐다가 반대로 화해의 손짓이 연출돼 주가와 금리도 같이 요동을 쳤다.
주가와 금리 공히 8월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는데, 위험자산 반등세가 연장되려면 G2 간 스몰 딜을 전제로 경기 반등이 가시화돼야 한다.
역으로 G2 협상이 다시 결렬될 경우 다시 안전자선 선호가 고조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전자에 무게 중심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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