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한국 경제

분쟁은 ‘산업지형’의 변화를 야기할 것 (메리츠증권)

반응형

 

2010년 ‘희토류(稀土類)’의 기억...


‘희귀함’은 무기가 될 수 있다. 

 

 

대체제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는 과거 중국의 ‘희토류 카드’를 연상케 한다. 

 

 

일본은 희토류를 무기화한 중국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2010년 9월 중국과 일본은 동중국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가쿠열도)의 영유권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일본은 이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이 퇴거에 응하지 않자 나포했고,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다. 

 

 

결국 일본은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18일 만에 사과와 함께 선장을 석방했다. 

 

 

상황만 놓고 보면 9년전 중국에 당한 일본이 이제는 한국에 보복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일본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일본 중재위의 한국측 답변요구 시한은 이달 18일이고, 이후 21일에는 참의원 선거가 있다.

 

 

 

이번 사안이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마찰음이 지속될 경우, 양국 간의 대응 강도와 협상의 진행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시장이 불안해 하는 이유다.

 


‘희토류’ 분쟁이라 표현되는 중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참고해 볼 부분은 크게 2 가지다. 

 

 

첫째, 양국간의 ‘분쟁 및 보복’이 시작되면 봉합이 나오더라도 ‘재발’의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2010년 희토류 분쟁은 일본의 사과로 끝난 듯 했지만 2012년 경제계 전반으로 확장되어 다툼의 범위 및 강도는 더 커졌다.

 


역사에 있어 타협은 없다는 점 때문일까. 

 

 

2012년 4월 일본의 센카쿠 열도를 매입하겠다는 이시하라 도쿄지사의 발언 등으로 중국의 반일 감정은 급격히 커졌고,
그 해 8월 중국 80여개 도시에서 반일 시위, 일본 편의점 공격, 공장 방화 등이 이어졌다. 

 

 

중국 내 일본 자동차 판매 감소, 일본 여행패키지 취소 등도 같은 시기에 진행됐다. 

 

 

2010년은 일시적 마찰이었다면 2012년 이후는 분쟁의 본격화 시기였다. 

 

 

어쩌면 2010년 일본의 ‘빠른 협상’은 또 다른 싸움을 하기 위한 ‘시간 벌기’ 였을지도 모른다.

 

 

 

 

둘째, 강대강의 대립은 산업측면에서 구조적 변화(ex. 밸류체인)를 낳는다. 

 

 

일본의 경우 2010년 희토류 분쟁 이후 호주, 인도, 카자흐스탄 등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90%에서 50%까지 낮췄고, 중국은 일본산 부품소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두 번째 분쟁이 불거졌던 2012년부터 일본산 부품소재 수입 비중은 15.9%(2012년 1월)에서 2년 만에(2013년 12월) 11.8%로 크게 하락했고 현재 까지도 큰 변화가 없다. 

 

 

일시적 변화가 아닌 구조적 변화로 연결됐다는 의미다.

 

 

일본산 부품을 다른 국가로 대체했다는 징후도 있다. 

 

 

중국의 전체 부품 수입과 대일 부품소재 수입이 2012~2013년에 디커플링된 점이 그렇다. 

 

 

일본 부품 수입 감소로 한국과 같은 여타 국가들이 수혜를 봤던 시기다. 

 

 

지금 일본은 이와 유사한 흐름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 

 

 

당시 일본의 피해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 중국과 같은 극한의 대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리가 참고해야 할 사안은 이렇다. 

 

 

중국과 일본의 분쟁은 역사적 사건에 기반한 마찰이 경제 분쟁으로 번진 경우에 해당되지만, 양국의 다툼이 경제적 파국으로 치닫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2010년과 2012년 사이에 분쟁을 대비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현실적으로 본다면 시간이 부족하다. 

 

 

양국 간에 경제보복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더라도 분쟁에 미리 대비한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은 협상을 통한 ‘봉합’이 최우선 과제다. 

 

 

반면 중기적으로 부품업체의 다변화 및 밸류체인의 변화는 협상과 무관하게 불가피해 보인다. 

 

 

부품 공급 측면에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노력은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이 단순히 일본의 정치적 블러핑이었다 해도 말이다. 

 

 

(무역)분쟁의 역사는 항상 그렇게 흐르기 때문이다.

 

 

분쟁은 ‘산업’의 지형을 바꿔 놓는다


지난 전략공감(분쟁의 재구성: ‘미일 무역마찰’이 남긴 것, 2019.6.26)에서 일부 언급한 내용이지만 1980년대 미국과 일본의 무역분쟁도 다르지 않았다. 

 

 

결과는 미국의 승리, 일본의 패배로 표현되지만 다툼의 과정에서 미국, 일본 모두 해당 산업의 변화가 수반됐다는 점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1980년대 일본은 고도 성장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었다. 

 

 

1985년에는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바뀌면서 싸움이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본 반도체 업체의 부상을 ‘제 2의 진주만 공습’이라 표현했고, 레이건 정부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다시 규제를 시작했다. 

 

 

결과는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1986년 일본은 미국의 반도체 수입을 강요하는 ‘반도체 협정’, 1988년 2차 협정에서는 일본 시장 내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 이상이라는 수치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흥미로운 점은 분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미국,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큰 변화를 겪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적재산권을 강화하고 반도체 설계에 방점을 두기 시작한 것이 일본과의 기술분쟁을 하면서부터이고, 일본은 미국의 공격에 살아남기 위해 제품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기술력’ 향상에 몰입했다.

 


현재 미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이 ‘팹리스(Fabless)’ 형태를 띤 것도 일본과의 기술마찰부터 비롯된 결과다(참고로 ‘팹리스’란 반도체 생산시설을 갖추지 않고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한 회사를 뜻하고 반대로 반도체 제조과정만 전담하는 기업은 ‘파운드리’라 한다). 

 

 

그 결과물이 미국의 DRAM 시장 점유율의 급격한 하락이고, 한국과 대만의 급성장이다.

 

 

 

 

아래의 내용은 1980~1990년대 미국과 일본의 ‘하이테크’ 마찰과 관련해 기록해 놓은 자료의 일부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핵심산업 위주로 재편하는 것이 주요했고, 일본은 산업의 폐쇄성이 빠른 성장을 이루는데 기여했지만 외부의 압력을 방어하는데 실패했다.

 


‘High – Technology Manufacturing and U.S Competitiveness(‘04.3) 중 발췌’

 


(정부정책) 1980년대 미국은 지적재산권 강화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82년 특허 보호를 강화한 미 연방법원과 각종 무역회담에서 국제적 보호를 추구한 데서 관찰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 제조업체들은 특허 및 라이선스 활동으로 상당한 수익 증가를 경험했다. 

 

 

이 변화는 제품 디자인과 혁신에 강점을 가진 기업들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중략)

 


(제품 포트폴리오의 변화) 미국이 메모리 사업을 지배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시장의 성장은 수반되지 않았다. 

 

 

대신 인텔, 모토로라, TI 등 미국 제조업체들은 메모리 제품보다 더 전문화된 디자인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논리회로와 마이크로컨트롤러 제품 수익이 메모리 제품의 수익을 초과했다. 

 

 

특히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라인(80386, 80486, 펜티엄 등)이 PC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등지에서 미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중략)

 


(산업의 변화) 1980년대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수직화된 반도체 생산 구조를 대체했다는 점이고 ‘팹리스’ 기업의 등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 일본은 제조업은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중략)

 

 

국내 산업의 변화도 느리지만 불가피할 것


우리가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한일 간의 갈등이 주는 분명한 시사점은 국가 간의 산업의 경쟁, 마찰이 심화될수록 산업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앞으로 사안의 진행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겠지만 역사가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산업은 스스로 진화하기보다는 외부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분쟁의 격화 여부를 떠나 지금부터는 국내 산업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좁게는 부품선의 다변화(국산화), 넓게는 위탁생산 활성화 가능성까지 말이다. 

 

 

 

리포트 원문 link : http://hkconsensus.hankyung.com/apps.analysis/analysis.downpdf?report_idx=530917

 


Investory 인베스토리 텔레그램 메신저 채널에 입장해서 새로운 글 알림 받기 : https://t.me/investory123

반응형